난독
배용주
나무의 문자를 읽는다
듣도 보지도 못한 문자를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양갱같이 말랑한
바람의 전위예술을 읽어간다
가지의 빈틈에 콧날이 서고
헝클어진 풀꽃은 눈꽃처럼 피는데
이 길은 어느 낭만파 시인이 걷던 길인가
날 좋은 봄날 허무맹랑한 자음과
겨드랑이에 숨겨뒀던 낯선 모음
행간에 눈, 물, 쏟아져 허벅지까지 차오르면
꽃눈과 잎눈 사이 색색으로 읽혀간 흔적
새떼는 내 배내옷 한입 물고 날아가고
경지에 이른 칼날은 허공에서 빛날 때
그들의 단어를 단칼에 떼어낸 나는
책 속에서 말라버린 푸른 문자를 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