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처럼
배용주
단숨에
쓰러져도 좋을 일이다
내 살아
물길 찾는 여린 솜털
풀꽃 하나 바람막이 되었다면
달팽이 같은 느린 꿈꾸며
시원한 그늘 한 점 기울이고
착한 이 서넛 좋은 추억 하나 되었다면
싹이나, 꽃 하나 못 피어도
내 죽어 어느 산골 아궁이
쩔쩔 끓는 아랫목이 되리라
그러지도 못한다면
식솔 많은 개미나
만삭둥이 거미에게
방 하나 내어주면 될 일
나 하나쯤
단숨에 쓰러져 썩어들며
머리 한쪽 잃은
버섯 몇 키워도 좋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