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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나비 꿈

회룡포 연분홍 치마

by 배용주 2023. 11. 30.

 

회룡포 연분홍 치마

                             배용주

 

물이 든다

연분홍 치마에 펄 물이 든다

아른거리는 주름살 같던 개펄 사이로

거리낌도 없이 하루 두 번

배꼽까지 차오르는 반가운 손

얘기 똥 유채꽃이

깜깜한 앞날에 길이 되어버린

배고픈 하루를 치자 빛깔로 물들이며

낯 알 같은 자식과 통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이에게 감사했었지

귓속에 종소리가 삶을 채울 때도 있었고

가마솥 하늘 열고 무릎 꿇는 날도 있었지만

이제 그 붉던 피 모두 지워지고

오랜 기침 한숨만 이어갔었는데

오늘은 뒷마당에 여린 꽃들이 많이도 피었어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연보랏빛 꽃잎을 열고 환하게도 반기고 있어

반갑기도 하지

잊지도 않고 찾아와

바람의 음표 하나씩 달고 있으니

볕 좋고 바람도 잠잠한 날

갯가서 낙지라도 잡아야겠어

바람에 휘날리는 연분홍 치마는 아니지만

몸빼바지 입고 바지락 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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