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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나비 꿈

공중에 달린 집

by 배용주 2023. 11. 27.

 


공중에 달린 집

                      배용주
 
볕 좋은 빈터에 목련꽃이 피었다
실금같이 갈라진 하늘에 겨울의 물꼬를 트고
가장자리부터 촛대전구 한 알씩 불 밝혔다
그 모습 하도 예뻐
손 그림자 비둘기 날갯짓을 기억하듯이
거꾸로 매달려 불 밝히던 백열등을 추억하다가
사십 년 전 기억처럼 나도
호롱에 성냥불을 댕긴다
 
종일토록 젖어 흐르던 하늘이
저녁에야 햇살 퍼지듯 환한 창문을 닫는다
동산 정수리 위에 백열등 하나 켜둔 채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이불 깔고 눕는다
마치, 그때같이
얼굴 붉도록 눈 비비며
나는 가슴 시린 꽃불을 피운다
끝자리마다 꽃 그림을 그려댄다
 
대문도 환하게 열어둔 집
이마를 들이밀고 피워댄 꽃집
손 모으고 기도하던 꽃잎들
어깨를 들썩이며
하얀 날갯짓으로 척척 내린다
촛대전구 한 알씩 깨져만 가고
덩그러니 필라멘트 몇 남는다
사월은 가고 나의 목련은 정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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