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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나비 꿈29

노춘가 노춘가 배용주 산들에 꽃이 피고 봉산에 바람 일면 울 엄니 물질하던 바닷가에 고이 앉아 열아홉 곱디고우신 옛 기억에 물드시고 해풍에 별이 뜨고 선창에 물결 자면 아부지 소금 털던 염전 둑에 홀로 앉아 아흔둘 주름살마다 옛 추억에 잠기시네 서산에 지는 노을 울 엄니 얼굴 같고 동산에 뜨는 달도 울 아부지 눈빛 같아 퇴근길 막힌 도로야 마음만은 고향 바다 2023. 11. 30.
축대 축대 배용주 모로 쌓인 축대 위로 올망졸망 국화꽃 피어 있다 한 송이 머리에 꽂은 큰딸의 눈동자가 빛나면 꼭 다문 입술 바르르 떨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버들잎 하나 축대 아래 웅크리고 앉은 그림자 셋 나란히 느린 시간의 붓대로무 언으로 그린 기억 츄리닝 바지 점퍼 운동화 끈이 풀린 아버지 방울무늬 리본 큰딸과 짤랑 귀고리 작은딸 태양은 벌써 십자가를 너머에 서고 바람이 꽃을 흔들 때마다 국화향기 가슴을 친다 아버지의 축대가 가볍기만 하다 2023. 11. 30.
사과를 쪼개며 사과를 쪼개며 배용주 서산에 뻐꾹새 울면 도둑고양이 까치발 디딤처럼 연둣빛 꽃잎 슬며시 풀어 올리며 따갑게 익어 갈 여름을 준비한다 탐스런 얼굴에 풋내가 돌면 냉수에 보리밥 휙 말아 넘기고 농부는 또 얼마나 잠을 못 이루며 잔별을 바라 볼 것인가 한 알의 사과 잘 쪼개면 연애를 잘한다는 웃기지 않는 유머를 흘리며 상큼함 입에 가득 물고 아버지의 좁은 터를 생각한다 2023. 11. 30.
어머님의 꽃 어머님의 꽃 배용주 어머니! 꽃이 피었어요. 어머니는 장독을 닦으시다 나비처럼 웃으셨다. 정월 초하루 낮은 단감나무 가지 아래 텃밭은 홍시빛이다. 주름진 가슴으로 겨울을 버텨 온 꽃 가슴이 아린다. 겨우내 말리신 어머님을 닮은 백일홍이 제목이 지워진 낡은 책 사이사이에 꽃을 피웠다. 2023. 11. 30.
꼭지의 힘 꼭지의 힘 배용주 어머니 호박을 들어낸다 굽은 허리로 보리밭둑에 앉아 햇살을 깔고 앉은 호박 하나 들어낸다 굽을 데로 굽은 마른 꼭지 햇살의 힘이 저들을 키워내려고 온 힘으로 꼭지를 굽혔을까 여린 잎 하나 틔우려고 꼭지가 돌도록 용 쓴 탯줄 그늘진 아랫목에 풀꽃 똬리 틀어 놓았다 아랫목에 햇살 깔고 앉은 저 호박 볕 드는 쪽으로 굽은 꼭지의 반대편 밥풀만 한 꽃잎 훈장처럼 배꼽에 달았다 2023. 11. 30.
개펄 개펄 배용주 저건 발자국이다 아니 시퍼런 회초리다 수천의 손을 짚고 두 발 질질 끌고간 앞치마 어머니 조금든 날 묵직한 저녁 캐오신다 2023.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