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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밤바다를 쓰다 해운대 밤바다를 쓰다 배용주 어지럽던 날들을 나 홀로 떠나 드넓은 바다를 읽는다 몇 해 전 쓰나미가 덮쳤다던 해운대 저마다 한 잎 이야기를 달고 푸들 대며 달려와 갯고둥 같이 어물거린다 아무것도 뵈지 않은 해변 물컹하게 무너지고 다시, 새살 돋듯 살아난 파도 내 발밑에서 무너지길 수차례 나의 절름발이 날들은 스스로 마비된 가오리처럼 푸른 상처를 어루만지며 의로운 한 소절 노래를 부른다 너의 젊은 날도 울렁이는 파도 같이 소독솜 꾹국 찍어 하얗게 갈기를 세운다 지칠 줄 모르는 심해의 몸짓 파도의 칼을 견뎌낸 것들이 상한 데 없이 읽어주듯이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 속에서 심해의 숨소리 펄떡거린다 2023. 11. 27.
뜨거운 침묵 뜨거운 침묵 배용주 살아라 죽기까지 촛불을 켜라 껍데기뿐인 나는 죽고 소년 같은 불꽃이 되라 때로는 침묵이 외침보다 크다 이제 우리 알기에 거짓된 혀로 청청한 깃발을 매달지 말라 숨 쉬는 이여 발마다 자국마다 애끓는 사랑으로 촛불을 켜다오 달맞이꽃 달과 함께 지고 담쟁이 푸른 벽을 넘듯이 눈빛에 새긴 노래 목청껏 깃대 높게 흔들라 아이야, 촛불을 밝힌다 앉아 울던 소년아 입마다 뜨겁게 내일을 살아라 2023. 11. 27.
쉼표를 찍으며 쉼표를 찍으며 배용주 쇠죽 끓이던 아버지 콧노래 할 때 두 다리 사이 출렁이던 백열등 빛 곤두박질칠 때 해산한 어미 뜨끈한 속살 꺼내어 이마를 핥을 때 얼마나 많은 별이 떨어졌을까 게으른 아침 햇볕 몽롱한 감기약처럼 일어설 때 치밀어 오른 새싹 흔들리는 하늘 밀어 내릴 때 깡으로 그리는 흐릿한 밑그림 위로 속살이 지날 때 또 얼마나 많은 별을 세어봤을까 쉼표를 찍으며 두 다리 세울 때 불어터진 젖통 찾아 끈질기게 가난한 배 채울 때 내 어머니 곰탕 끓여 아침을 나르실 때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해는 허공으로 사라졌을까 2023. 11. 27.